[영화/스포주의]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악하다
별점: ★★★★☆
2011년에도 8월에 개봉했었던 혹성탈출. 여름철이 항상 그렇듯 블록버스터 대작영화는 가을로 쭉 밀려있고, 공포영화는 보기싫고 그래서 예고편도 보지않고 고른 영화였다. 보통 사전정보 없이 보는 영화는 시원하게 망하거나, 생각보다 괜찮거나 하기 마련인데 나는 이 영화가 그냥 불편했다.
영화를 보는내내 나혼자 안절부절 하지못해서 팝콘도 거의 먹지 못했다. 윌(주인공)이 시저를 대하는 태도가, 시선이, 자기가 시저를 가르치고 성장시키고 있다는 오만한 착각이 소름끼쳤다. 시저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제일 위험하게 만들었던 윌의 모든 이기적인 행동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과계 백인 남자들은 항상 신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이언맨의 토니도 그렇고, 헐크도, 배트맨도....)
차라리 시저가 유인원이 아니라 말하는 돼지나 똑똑한 닭이었다면 덜 불편했을것 같다. 소도 좋고. 시저가 영화내내 타고다니던 말도 좋고. 유인원만 아니면 다 좋을것 같았는데 원작 감독은 똑똑하게도 유인원을 택했다. 인간과 가장 닮은 존재, 눈빛도 걸음도 표정까지 비슷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내내 더 불쾌하고 두렵게 만든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고 곧 모든 일을 대체할거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인간의 대체품?이 불러일으키는 불쾌함의 원조는 유인원이 아닐까 싶다.
잡설이 길었다.
아무튼 시저는 이번 영화에서도 성장한다. 이쯤이면 성인(聖人)의 경지다. 이 혹성탈출 삼부작은 내내 시저의 발걸음을 쫓아다니면서 시저의 성장을 보여준다.
시저는 계속해서 인간에게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숲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뿐이라며 평화의 메세지를 보냈지만. 영화가 시작한지 20분만에 끝나지 않으려면 인간은 시저의 메세지를 철저히 묵살하고, 시저의 아내와 첫째 아들을 죽일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의도대로 복수에 눈이 먼 시저는 무리를 떠나, 홀로 가족을 죽인 원수 '대령'을 쫓아 길을 나선다. 여차저차 가까스로 유인원 수용소에 도착한 시저는 허망하게 잡혀버리고 약속된 고문과, 시련과, 동료 유인원들의 차가운 시선을 꿋꿋하게 버틴다. 그와중에 동료 유인원들의 생존권을 위해 시위도 하고, 복수도 포기하지 않는다.
역시 시저다. 리더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악당 대령은 그런 시저에게 공감이라도 받고싶은양, 굳이 따로 불러내서 구구절절 자기가 왜 시저의 가족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참 친절하고 구질구질하다. 자기도 유인원들이 퍼뜨린 바이러스 때문에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였으니, 너도 전쟁중에 일어난 일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란다.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이 빈약한 말빨로 어떻게 대령자리에 오른건지 궁금하다.
거기에 스킨헤드 머리, 수염, 백인 중년남자, 군인, 독재자, 아들을 내손으로 죽였으니 어쩌니 하는 클리쉐까지 친절히 섞어준 감독님... 덕분에 며칠전에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있었던 백인우월주의 시위가 떠올랐다. 시기적으론 분명 우연이었겠지만, 그 시위와 영화속 상황이 겹쳐보였다.
미국내 백인이 유색인종을 미워하는건 그들이 자신의 일자리와 권리, 여자를 빼앗아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색인종만 아니었으면 모든 부귀영화가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게 딱 짐승수준이다.
한편 영화속에서 인간이 유인원들을 멸종시키려 드는 이유는 바이러스의 생존자인 그들도 체내에 바이러스가 남아있고. 그 바이러스가 변이되어 점점 말을 잃고, 생각을 잃고, 본능밖에 모르는 짐승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들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유인원들에게 거두어져 애완 인간이 되기 전에, 감염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유인원들도 싹 다 없에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놈이 대령이다.
물론
다른 인간들도 이 대령같은 수준은 아니라서, 감염된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죽이지말고. 치료약을 개발하자는 반대파가 있긴 했나보다. 하지만 이놈들도 유인원을 죽이는데에는 찬성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한숨이 나온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계 인간이지만 유인원을 다
없엔다고 인간들의 짐승화가 멈춰지는게 아니라는것쯤은 안다. 그리고 치료약이 필요하다면, 오히려 날로날로 똑똑해지는 유인원을
잡아다가 피를 뽑아서 분석을 하든, 생체실험을 하든해서 치료약을 만들어야 하는것 아닌가? 이과는 1차 바이러스 확산때 다 죽었단 말인가?
1편,
2편에서는 갈등구조에 아주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주던 감독이 3편에서 살짝 삐끗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상처받다가 도망친 유인원, 전기가 너무 간절해서 쳐들어 올수밖에
없었던 인간. 그 와중에 서로 많은 상처를 입었고 서로를 증오하는 것까지 괜찮은 서사였는데...
차라리 수용소에 유인원을 가두고 생체실험을 하는 도중이었습니다 ~면 납득이 빨랐겠다. 시저가 단호하게 말했듯이 실제로 전쟁났을때 별 쓸모도 없는 벽을 세우기위해 그렇게 증오하던 유인원들을 죽이지않고 이용했습니다 ~는 너무 얄팍하다. 나중에 시저가 반항하고 시위했다고 진짜 물이랑 음식준 것도 좀 우스웠다.
거기에 인간의 선함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벙어리 소녀 노바도 존재감이 너무 없었다. 나는 영화 포스터에 크게 찍혀있길래 적어도 이거보단 존재감이 있을줄 알았거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캐릭터 같다. 노바대신 다른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애기 고릴라를 넣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노바가 소녀라서, 영화내내 뽀얀 얼굴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했고. 나중에 커서는 유인원 무리에서 어떻게 자랄런지 2차성징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되서 집중이 안됐다.
결국 감독님은 약하고 악한 인간들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유인원의 모습이 보고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막판에 눈사태로 인간을 멸종시키는 장면을 꼭 찍고싶으셨던 것일까. 그리고 저번 로건때도 느꼈지만 중년의 남자(혹은 유인원)과 어린 소녀의 조합은 약속된 흥행 보증수표인가...
궁시렁거리고 있지만, 그만큼 이 영화에 기대가 컸고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영화내내 시저의 등을 쫓으며 그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있는지 보아왔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긴 여정을 끝내고, 사랑하는 무리안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는 장면에 가슴이 저렸다. 드디어 시저가 인간이나 유인원 어느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게 된것이 너무 기뻤다. 다소 아쉬운점이 있지만 이 영화는 감독님의 꽉 닫힌 해피엔딩을 본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다. 많은 고민과 애정이 묻어나는 삼부작이라고 생각한다.